잊혀지면 안될 범죄사건

1975년 대한민국, 피로 물든 55일의 악몽 : 연쇄살인마 김대두

범죄기록자 2025. 10. 2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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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두는 대한민국 최초의 남성 연쇄살인마이다.

1975년 가을, 그의 잔혹한 살인 행각은 55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17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그가 남긴 상흔은 오늘까지도 우리 사회에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시대의 불안 속, 출소와 함께 시작된 악몽

김대두는 서울에서 생활하며 폭력사건에 휘말려 전과 2범의 범죄자가 되어 징역형을 선고 받아 교도소에 2차례나 수감되었다. 그로인해 친구들에게 전과자라며 무시당했고, 소외감과 사회의 불만을 가지게 되며 살기를 품기 시작했다.

 

1975년 8월 12일, 갓 교도소에서 출소한 29세 김대두는 가진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두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전라남도 광산군 임곡면에서 잠자고 있던 노부부를 습격, 도망치려는 62세 할아버지를 낫으로 살해하고 부인인 할머니에게 중상을 입힌 뒤 손전등 하나를 훔쳐 도주하였다. 김대두의 첫 연쇄살인행위의 시작점이다.

 

첫 살인 후 순천행 기차에 몸을 실었던 김대두는 우연히 교도소 동기인 김해운(당시29세)를 만나 비슷한 처지의 두 사람은 순식간에 의기투합 하였고, 함께 움직이며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전라남도 무안군의 한 구멍가게 일가족을 습격, 노부부와 7살 손자를 살해하고, 고작 250원을 훔치며 가게의 과자와 음료수 등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들은 차라리 돈많은 서울에서 살인을 하자며 기차를 타고 상경했지만, 얼마 못 가 헤어졌고 김대두는 혼자 살인 행위를 이어갔다.

 

그의 살인 행위는 단 55일동안 전국을 떠돌면서 17명의 살해, 13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범죄를 저지른다. 1975년 9월 25일~10월 2일까지 단 1주일동안 경기도 일대의 외딴집을 집중적으로 노려 11명을 살해, 2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등 예측 불가능한 무차별적인 살인을 이어갔다.

당시 언론에서는 '야수의 짓'이라며 경악을 하였다.

 

김대두는 범행 대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특히 취약한 노인, 여성,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그의 표적.

 

  • 1975년 8월 13일, 전라남도 광산군 임곡면에서 잠을 자고 있던 노부부를 습격. 도망치려는 할아버지(62세)를 낫으로 살해, 절구의 공이로 부인인 할머니를 때려 중상을 입힌 뒤 손전등 하나를 훔쳐 도주.
  • 1975년 8월 19일, 전라남도 무안군 몽탐녀의 한 구멍가게에서 일가족을 습격하여 노부부와 7살 손자를 살해, 250원을 훔치고 가게의 과자와 음료수, 빵 등을 무전취식.
  • 1975년 9월 7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면목동으로 올라와 친척 누나의 집에서 머물던 중 근처에서 홀로 집에 거주하던 할아버지(60세)를 살해.
  • 1975년 9월 25일, 경기도 평택군 송탄읍에서 할머니(71세)와 딸(40세), 손주들을 습격. 5살, 7살, 11살 손주들을 포함한 일가족 5명을 살해. 11살 손녀는 집 밖의 나무에 묶여 강간 시도 후 살해당한 상태로 발견, 4명의 희생자들은 망치로 살해당했는데 장도리의 손잡이가 부러질 정도로 내려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함몰.
  • 1975년 9월 27일, 경기도 양주군 구리읍에서 일가족 습격. 20대 부부와 자녀인 3살 아기 등 3명을 살해하고 아내의 모친과 할머니 등 2명에게 상해.
  • 1975년 9월 30일, 경기도 시흥군 남면에서 생후 3개월 된 여자아이와 그녀의 어머니(28세)를 습격하여 어머니는 강간한 뒤 살해. 아이는 울음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둔기로 내려쳐 짓밟아 장 파열로 숨지게 하고 집에서 2300원 가량 훔쳐 도주.
  • 1975년 10월 2일, 경기도 수원시 우만동에서 30대 부부를 습격하여 남편(38세)을 그자리에서 둔기와 칼로 무파별적 공격하여 살해. 아내(37세)는 옷을 벗겨 나체로 집 밖의 야산으로 끌고 나가 양손을 결박한 뒤 살해.
  • 1975년 10월 3일, 경기도 수원시에서 골프장 캐디로 일하던 여성(21세)을 습격하여 강간시도, 피해 여성이 지나가는 차량을 보고 도움을 요청하여 상해를 입히는데 그침.
  • 1975년 10월 7일,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서 공범으로 포섭하려고 했던 남성 1명을 살해.

유독 어린아이를 잔인하게 살해한 이유에 대해, 아이들의 공포에 찬 울음소리가 그의 신경을 자극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대두는 상류층을 노리던 강도살인범들과 달리, 얼마안되는 돈, 손전등, 고추, 과자 등 자신이 살아온 삶과 유사한 환경의 약자들만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김대두의 이런 살인행위에 대한민국은 공포에 질렀고, 밤이 되면 길거리에는 인적이 끊겼다. 모든 집들이 문단속을 철저히하는 등 사회 전체가 거대한 악몽에 갖히게 되었다.

 

연쇄 살인행위의 끝. 55일의 악몽이 끝나다

범행을 거듭하며 대담해졌던 김대두. 사소한 실수로 인해 덜미를 잡히게 된다. 1975년 10월 7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공범으로 포섭하려던 남성을 살해한 김대두는 남성이 입고있던 청바지를 벗겨 갔다. 문제는 청바지가 피범벅이었다. 김대두는 피 묻은 청바지를 청량리역 근처 세탁소에 맡기며 '친구랑 싸우다 코피를 흘렸다'고 변명 후 세탁물을 맡겼다.

 

코피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피가 묻어있었기에 수상하게 여긴 세탁소 직원은 경찰에 신고하였고, 김대두 검거의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당시 청량리 경찰서 강력반 형사(윤화섭형사,홍세호형사)는 김대두를 붙잡았다. 김대두는 처음에 '친구랑 싸웠다' 말했다가 나중엔 '불량배들에게 구타당했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청량리 일대에는 사창가 조폭들이 많았기에 그럴듯한 변명이기도 했지만, 형사들의 끈질긴 탐문 수사 결과 그의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1418999

 

외딴집 연쇄살인범 검거 | 중앙일보

경기도 일원 외딴집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 김대두(26·무직·일명 김영태·전남 당암군 학산면 은곡리167)가 범행 시작 55일만인 8일하오 시민의 신고로 서울 청량리 경찰서에 붙잡혔다. 범인 김은

www.joongang.co.kr

 

검거 당일, 기자들과 박경원 내무부장관 등 수많은 인파로 청량리경찰서가 북적거렸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 된 사건의 해결이었기에, 경찰서는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다. 홍세호 형사는 순경에서 경장으로 1 계급 특진하였고, 세탁소 직원은 당시 100만원이라는 거액의 포상금을 받았다.(오늘날 가치로는 약 1천만원) 김대두는 55일간 강도 살인 행각을 벌이며 빼앗은 돈은 고작 26800원에 불과, 이는 현재 가치로 29만원 정도였다. 김대두의 범죄 행위는 돈에 대한 범죄는 아니라 볼 수 있다.

 

김대두의 법정심판

체포된 김대두는 17명 살인, 13명 중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현장 검증에서 껌을 씹으며 히죽거리는 그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또한번 충격과 분노를 안겼다. 김대두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공범 김해운 역시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2심에서 김해운은 김대두의 강요에 의한 1건의 살인에만 가담한 점이 참작되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김대두는 상고를 포기하며 사형 확정되었다.

 

김대두는 옥중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고 알려졌다. 성경을 읽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과 같은 죄인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간증했다고 한다. 실미도의 저자 백동호 작가 등 당시 수감됐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조금이나마 잘못을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기는 했다고 전했다. 수천명에게 전도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김대두의 옥중 생활은 '회개'의 상징처럼 비치기도 하였다. 김대두는 참회가 진심인지, 아니면 죽음을 앞둔 인간의 마지막 발버둥인지에 대한 논란은 오늘날까지도 회자되었다.

 

결국 김대두는 사형이 확정된지 불과 9개월 후인 1976년 12월 28일, 다른 미집행 사형수 25명과 사형되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빠른 사형 집행은 그만큼 국민들이 그의 잔혹한 범죄에 대한 정의실현을 강력히 원했음을 보여주는듯했다. 공범 김해운은 18년간 복역을 끝으로 1993년 가석방되어 고향인 순천으로 돌아갔으나, 이후의 근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김대두의 유언

김대두. 그가남김 유언은 '전과자들을 냉대하지 말 것, 잡범과 중범죄자, 초범과 재범을분리 수감하여 초범이나 잡범이 교도소에서 더 큰 범죄를 배우지 못하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김대두 자신이 바로 전과자에 대한 냉대와 교도소 동기(김해운)와의 만남을 통해 더 큰 범죄의 길로 들어선 장본인이었기에 이같은 유언을 남긴것으로 전해졌다.

 

김대두와 같은 연쇄살인범의 정신적 측면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통해 이 후 벌어질 수 있는 유사사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 결과 30여년 뒤 또 다른 연쇄살인범 유영철, 강호순의 등장으로 범죄 심리와 프로파일링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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