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면 안될 범죄사건

뇌수를 먹고, 지문을 도려내다: 인간이 아니었던 그 이름, 유영철 연쇄살인 파일 (절대 잊으면 안될 인쇄살인범) 세계랭킹 31위

범죄기록자 2025. 12. 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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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많이 알려진 사이코패스 범죄자에 대해 작성할게. 워낙 유명하고 저지르고 다닌 범죄가 많아서 언제 쓸까 고민하다가 이번에 글을 남겨보도록 할게. 잘 들어봐.

 

 

이름은 유영철. 저지른 짓은 대한민국 사회에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잔인하게 각인시킨 인물이야. 단 10개월 만에 무려 20명의 목숨을 앗아간 악마 같은 연쇄살인범. 


범행일지.
2003년 9월 11일

 

전주교도소의 철창문이 열리고 유영철이 걸어 나왔던 그 날. 10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서울 한복판을 피로 물들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 그때만 해도 평범한 거리였을 서울이, 곧 수많은 비명과 절망으로 뒤덮일 줄이야. 유영철이 저지른 절도 행각으로 고작 징역 10개월을 받고 풀려났다는 사실 자체가 기가 막혔지. 더 황당한 건 뭔지 알아? 절도죄로 재판받는 중에 지가 십자가를 부수며 "신도 죄인 편이 아니라 부자 편" 소리쳤다는 거야. 자기가 저지른 죄는 생각 않고, 감형받지 못했다고 세상을 원망하는 그런 놈. 피해자들 입장에선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런 놈의 손에 죽어야 했을까..

 

2003년 9월 24일
강남 신사동에서 첫 살인

 

그 첫 시작은 너무나도 잔혹했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고급 주택. 유영철 이 악마는 그곳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이모 씨(72세) 부부의 삶을 둔기로 무참히 짓밟았어. 더 소름 끼치는 건, 그 살인 이후의 행동이야. 지문 하나,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으려 온 집안을 치밀하게 닦아내고 현관문까지 잠근 채 도주하려 했지.

그런데 말이야, 이 파렴치한 놈이 잭나이프를 현장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담을 넘어 침입한 거야. 잠긴 현관문을 발로 차 부수고 들어가 잭나이프를 찾아 유유히 빠져나왔다니… 그의 대범함과 사이코패스적 침착함이 소름 끼치지 않니? 피해자들이 흘린 피는 닦을지언정, 자신이 흘릴 피는 두려워했던 비겁한 악마의 민낯이야.

 

2003년 10월 9일
구기동 비극

 

신사동 살인 이후에도 유영철은 멈추지 않았어. 종로구 구기동, 이번에는 주차 관리원 고모 씨(61세)의 집이었지. 고 씨의 아내(60세)와 어머니(85세), 그리고 안타깝게도 지체 장애를 가진 아들(35세)까지. 이 자는 한 가족 세 명을 둔기로 무려 34회나 강타해서 살해했어. 34회라니… 그 숫자가 주는 잔혹함이 가슴을 후벼 파지 않니? 특히, 2층에서 내려오던 아들에게 잭나이프를 들이대고 끌고 올라가 해머로 머리를 내리쳐, 두개골이 부서져 뇌가 튀어나올 정도로 잔인하게 죽였다는 사실은 듣는 사람마저 미치게 만들 지경이야. 아무것도 저항할 수 없는 약자를 향한 그의 잔인함은 이미 인간의 영역을 넘어섰어. 이 가족에게 무슨 죄가 있었다고, 한 날 한 시에 이런 참혹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2003년 10월 16일
삼성동, 엇나간 수사

 

강남구 삼성동의 2층 단독주택. 유모 씨(69세)는 유영철의 다음 희생자가 됐어. 아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화장실 바닥에 피를 흥건히 흘린 채 신음하는 아버지를 발견했으니… 그 아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현장에서는 구기동 사건과 같은 발자국이 발견되었고, 이때부터 언론은 연쇄살인을 기정사실화하기 시작했지. 경찰을 향해 “범인의 윤곽조차 못 잡고 엉뚱한 가족만 괴롭힌다”는 비난이 쏟아져 나왔어.

하지만 경찰의 반응은 더 기가 막혔어. 둔기와 잔인한 수법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칼의 깊이와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동일범이 아니라는 안일한 결론을 내렸지. 이때부터 이 놈은 더 대담하게 범행을 이어갔던 거야. 만약 그때 경찰이 제대로 수사해서 동일범임을 인지했더라면, 그 뒤에 일어날 수많은 참극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2003년 11월 18일
혜화동의 불길

 

종로구 혜화동의 2층 단독주택. 집주인 김모 씨(87세)와 파출부 배모 씨(53세)가 둔기에 의해 또다시 목숨을 잃었어. 증거를 없애기 위해 금고에 불까지 지르는 치밀함… 하지만 이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도 기적은 있었지. 태어난 지 고작 3개월 된 증손자가 이불에 둘러싸인 채 질식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어. 어두운 참극 속 한 줄기 빛 같은 기적이야. 이 아기가 부디 아무런 고통 없이 자랐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때, CCTV에서 이 놈의 뒷모습이 찍혔어. 자신의 상의에 묻은 피를 감추려고 피해자의 옷장 점퍼를 입고 나오는 뒷모습. 국과수는 이 영상으로 범인의 키가 168cm라는 것을 밝혀냈고, 금강제화 버펄로 캐주얼화를 신은 20~30대 후반의 남성을 찾는 수배 전단이 전국에 뿌려졌지. 자신이 CCTV에 찍혔다는 사실을 안 유영철은 잠시 살인을 멈췄지만, 이건 단지 폭풍 전야일 뿐이었다는 게 더 끔찍한 사실이야.

 

 

2004년 4월 14일
황학동 비극

 

서울 중구 황학동의 도깨비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안모 씨(44세). 유영철은 위조한 서울지방경찰청장 명의의 신분증으로 경찰을 사칭하고 수갑을 채워 안 씨를 자신의 베스타 승합차로 유인했어. 처음엔 돈을 뺏고 보내려던 계획이었다고… 피해자 안 씨는 노점상 단속 때문에 경찰서를 자주 들락거려서 유영철의 신분증이 가짜임을 단번에 알아챈 거야. 그 순간 유영철은 안 씨를 살려두면 그동안의 연쇄살인 행각과 경찰 사칭이 들통날 것을 직감하고 살해를 결심했어.

수갑으로 묶인 안 씨의 얼굴, 머리, 목을 잭나이프로 마구 찌르고, 죽은 줄 알았는데 발길질로 저항하자 해머로 머리를 수 차례 내리쳐 살해했어. 유영철 이 악마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지. 잭나이프로 손등을 다친 자신의 피가 승합차에 떨어진 걸 보고, 증거 인멸을 위해 승합차에 불을 지를 계획을 세웠어.

 

더욱 끔찍한 건, 안 씨의 두 손목을 잭나이프로 절단해서 비닐봉투에 담고, 월미도 방파제 바위틈에 버렸다는 사실이야. 수갑 자국을 없애고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게 만들겠다는 그 섬뜩한 치밀함에 또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불태워진 시신은 DNA 감식조차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었어. 안타깝게도 유족들은 겨우 남은 시신 몇 점으로 장례를 치러야 했지.

그리고 이 사건은 안 씨의 가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가져왔어. 4형제 중 장남이었던 안 씨가 죽고 나서,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둘째 남동생이 같은 해 11월에 자살했어. 그 동거녀도 애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뒤따라 자살했고. 이듬해 2005년 7월에는 막내 남동생까지 자살했어. 홀로 남은 셋째 남동생은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다가,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를 보고 겨우 삶의 의지를 찾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대.

세상에, 한 악마의 살인으로 세 남동생이 차례로 죽음을 선택하다니. 이건 살인을 넘어 한 가족의 씨앗을 말려버린 짓이나 마찬가지야. 연쇄살인 피해자 유가족이라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니, 정말 이 사회는 피해자에게 너무나도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장검증에서 너무나 태연한 유영철의 모습에 실신까지 했던 안 씨의 아내는 결국 자식들과 함께 잠적해 버렸고, 안부는 물론 생사조차 모른다고 해. 이 모든 게 단 한 놈, 유영철이라는 악마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2004년 3월 ~7월
마사지사 여성들

 

부유층 노인들과 노점상을 노리던 유영철의 광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어. 2004년 3월부터 7월까지, 그는 마포구 신수동 오피스텔과 노고산동의 다른 오피스텔에서 전화방 도우미와 마사지 도우미 등 무려 11명의 여성들을 불러들여 살해했어. 그리고 그 시체들을 토막 내 암매장하는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지.

 

 

유영철은 길거리나 여관에서 여성들을 만나 경찰을 사칭하며 자신의 오피스텔로 유인했어. 신분증 위조는 기본이고, 남대문시장에서 산 수갑까지 보여주면서 말이야. 집에 들어온 피해 여성들에게 샤워를 하게 한 후, 욕실로 따라 들어가 해머로 머리를 가격해 기절시키고는 거버 나이프로 목을 잘랐어.

그는 토막 낸 시신을 16~18개 조각으로 나눴고, 자른 머리의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묶어 벽에 달린 휴지걸이에 매달아 놓아 피를 다 빼냈다고 진술했어. 이건 인간의 행위라고 도저히 볼 수 없는 짐승 같은 짓거리다! 시신을 토막 낼 때 소리가 날까 봐 물을 틀고, 심지어 반젤리스의 라는 음악을 틀어놓고 이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니. 처음엔 쇠톱을 썼는데, 차츰 칼만으로도 토막 내는 시간이 짧아질 정도로 능숙해졌다고 하니, 이 자의 광기가 어디까지 갔는지 짐작할 수조차 없어.

더욱 충격적인 건, 자신의 신원이 드러날까 봐 11명의 피해 여성 중 단 한 명과만 성관계를 맺었고, 그것마저도 관계를 맺은 피해 여성의 손가락 지문을 모두 칼로 벗겨내 화장실 변기에 버렸다는 사실이야. 시신을 검정 비닐로 싼 다음 땅에 묻고 나서도 지문이 남을까 봐 비닐봉지까지 모두 회수했다니, 그의 치밀함과 냉혈한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그는 피해자의 공포나 비명을 즐기지도 않았고, 순식간에 피해자들을 즉사시켰어. 이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특징이지.

 

 

유영철이 직접 그린 토막살인 과정. 유영철은 피해 여성 11명을 죽인 뒤 시체를 16~18조각으로 나누어 유기했는데 덩치가 작으면 16조각, 덩치가 크면 18조각 토막 냈다.

유영철의 광기, 시신 훼손과 식인

 

유영철은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했어. 자신의 역겹고 뒤틀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체에 대한 모욕과 절단이라는 엽기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저질렀지. 시체의 뇌수를 믹서에 갈아 마시는 식인 행위는 물론, 간과 자궁, 음부까지 잘라내는 짓을 했다고 하니, 대체 이 자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악마는 자신이 죽인 순간을 끊임없이 회상하고 즐기기 위해, 자신만이 아는 장소에 시체를 토막 내 암매장했어. 그리고 피해자가 차고 있던 팔찌 같은 물건들을 마치 '전리품'처럼 챙겨 다니며 자신의 끔찍한 범행을 기념했지. 프로파일러들은 이런 유영철의 행동을 "연쇄살인범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회상기"라고 분석했어. 즉, 살인 행위를 되새기며 다음 범행을 계획하는 거지. 살인과 살인 사이에는 항상 냉각기가 있었는데, 특히 직업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계획 살인에서는 그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니… 이 놈의 범행 수법이 점차 더 잔혹하게, 그리고 더 빠르게 숙달되어가고 있었던 거야. 생각만 해도 역겹고 치가 떨린다.

  • 2004년 3월 16일: 전화방 도우미, 고작 23세 여성의 목을 두 손으로 졸라 살해. 시신은 서강대학교 뒷산에 암매장했어.
  • 2004년 4~5월: 신원이 불분명한 20~30대 여성을 살해했지. 이때부터는 다시 둔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암매장 장소도 서강대 뒷산에서 봉원사 근처 산으로 바꾸는 치밀함을 보였어.
  • 2004년 5월: PC방에서 조건만남 쪽지를 보내고 있던 25세 여성을 발견하고는, 위조 경찰증을 들이밀며 윤락 단속이라 속여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살해했어. 얼마나 뻔뻔하고 파렴치한 짓이야.
  • 2004년 6월 2일: 전화방 도우미, 35세 여성 살해.
  • 2004년 6월: 신원불명 20대 후반 여성 살해.
  • 2004년 6월 9일: 출장 마사지사, 26세 여성 살해.
  • 2004년 6월 18일: 전화방 도우미, 27세 여성 살해. 더 기가 막힌 건, 유영철 이 놈이 부른 여성 대신 다른 여성이 갔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했다는 거야. 이건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그저 장난감처럼 취급한 거지.
  • 2004년 6월 25일: 출장 마사지사, 28세 여성 살해.
  • 2004년 7월 2일: 출장 마사지사, 26세 여성 살해. 이 희생자의 이름이 유영철과 헤어진 여자친구의 이름과 같다는 이유로 살해하고 나서도 시신을 마구 훼손했대. 증오에 눈이 멀어 엉뚱한 사람에게 분풀이를 하는 저 비겁하고 잔인한 모습!
  • 2004년 7월 9일: 출장 마사지사, 24세 여성 살해.
  • 2004년 7월 13일: 출장 마사지사, 27세 여성 살해.


악마의 체포, 정의를 향한 분노

 

드디어 이 악마의 꼬리가 잡히는 순간이야. 2004년 7월 15일, 기적처럼, 아니, 정확히는 인간적인 연대와 상식 덕분이었지. “특정 번호로 나간 마사지사들이 자꾸 실종된다”는 출장 마사지 업주의 신고로 이 놈이 드디어 체포되었어. 당시 경찰은 유영철을 그저 마사지사들을 지방으로 팔아넘긴 '납치범' 정도로 생각했대. 얼마나 안일했던 생각이었는지!

하지만 유영철 이 놈은 거기서도 경찰을 조롱했지.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바로 나다”라고 진술하면서도, 구체적인 정황을 모르는 척 연기하며 경찰을 가지고 놀았어. 그러다가 "시체를 숨긴 장소를 알려주겠다"며 경찰서를 나서던 길에 도망치려 했지. 하지만 겨우 11시간 만에 영등포역에서 다시 붙잡혔어.

 

 

체포 후에도 이 놈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철저히 입을 다물었어. 그러다 김용화 수사부장(경무관)이 직접 조사를 시작하자, 그제야 4건의 살인을 자백하기 시작했지. 현장 검증에서는 무려 26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했고, 내장이 모자라는 시체가 몇 구 있다는 추궁에 식인까지 했다는 끔찍한 자백을 쏟아냈어. 하지만 26명 살해 주장은 후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밝혀졌고, 최종적으로 확인된 희생자는 20명이었지.

유영철은 2005년 6월 9일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교도소에 복역 중이야. 사형 미결수로 분류된 채 말이야.

 

2007년에 법무부에서 사형을 추진하려 했지만, 당시 노무현정권,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반대로 무산된 적도 있어. 이 때문에 사형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 청와대의 반대가 없었다면 유영철은 교수형이 집행됐을 거야. 유영철에게는 어떤 인권도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피해자들이 당했던 고통에 비하면, 사형도 너무 가벼운 벌이라고!

 

검찰의 실수와 진실 은폐

 

여기서 검찰의 치명적인 실수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어. 유영철이 체포된 후에 이문동 살인사건도 그의 소행이라고 몰고 갔었지. 이문동 살인사건은 유영철에게 유죄가 되건 말건 이미 사형을 받을 상황이었지만, 문제는 희생자 유가족들이었어.

 

 

유영철을 이송하던 경찰이 유영철에게 달려들던 피해자 유가족을 발로 걷어차서 비난을 받기도 했어. 논란이 된 형사는 '유족인 줄 몰랐으며 달려든 유족이 들고 있던 우산을 순간적으로 흉기로 보았다'라고 해명했지. 이후 이 형사 본인이 피해자 남편에게 찾아가 사과했다고... 알고 보니 이 유족은 유영철이 아닌 정남규가 진범이었던 이문동 살인사건 피해자의 어머니였대. 유영철에게 속은 경찰 공권력에 딸이 두 번 세 번 죽고 본인은 (딸을 죽였다고 생각했을) 살인마가 보는 앞에서 발길질까지 당했으니 그 심정은 아무도 알 수 없겠지. 이 사건은 '유영철 경호원 사건'이라는 조롱과 비아냥 섞인 명칭으로도 불리며 지금도 비판받는 대한민국 경찰의 병크 중 하나.

 

만약 이 사건이 유영철의 범죄로 판결 났더라면, 희생자 가족들은 영영 진범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야 했을 거야. 검찰은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상고심까지 끌고 갔고, 결국 확정판결이 난 뒤인 2006년이 되어서야 연쇄살인범 정남규가 이 사건을 저지른 것을 자백하면서 뒤늦게 진범이 밝혀졌어. 표창원 교수조차도 당시에는 유영철의 소행으로 보고 있었지만, "범죄의 대상과 방식에 명확한 차이가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었다니. 정말 분통 터지는 일이야. 진실을 밝히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이런 안일한 대처로 인해 더 큰 혼란을 초래했던 거지.

 

 

 

사이코패스 유영철, 동기의 진실

 

 

유영철은 사이코패스 판정 검사(PCL-R)에서 30점 이상의 높은 점수를 받았어. 하지만 이 검사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만능 검사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해. 이 놈이 살해한 희생자들은 대부분 '금전'과는 상관없이 그저 그가 죽이기 쉬운 사람들이었어. 경찰 조사에서 윤락녀처럼 보이는 여성을 주로 노렸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어. 이런 발언은 "여성의 옷차림이 강간 및 살인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매우 잘못된 통념을 불러일으키는 데 일조했지.

사실, 유영철이 윤락녀를 고른 합리적인 이유는 단순해. 자신의 집으로 유인하기 쉽고, 섣불리 경찰에 신고하지 못할 가능성 때문이었을 뿐이야. '윤락녀처럼 보이는 여성을 노렸다'는 말은 그저 한때 종교를 믿으면서 색욕을 죄악시했던 그의 뒤틀린 관념에서 나온 변명에 불과한 거지.

초기 범죄는 타인의 가택에 침입해 둔기를 휘둘렀지만, CCTV에 뒷모습이 찍히고 수배 전단이 배포되면서 범행에 두려움을 느꼈어. 그리고 이후에는 은둔 생활을 하다가 돈이 궁해지고, 자신에게 이혼을 통보한 아내에 대한 원한 때문에 성매매 여성들을 노리게 된 거야. 금전을 빼앗고, 여성들에게 업주에게 '좋은 사람을 만났다. 그만둔다'는 거짓 전화를 강요하게 한 뒤, 손망치로 살해했지. 이것이야말로 치밀하고 악랄한, 그놈의 진짜 본성이 드러난 거야.

 

경찰의 거짓말과 '추격자'의 탄생

 

유영철이 체포된 직후, 경찰은 마치 '프로파일링의 승리'인 양 자화자찬을 늘어놓았어. 하지만 실제 진실은 달랐어. 유영철을 붙잡은 것은 바로 출장 마사지 업소 업주들이었어. 특정 번호로 나간 여성들이 잇따라 실종되자, 몇몇 보도방 업주들이 회담을 열고 그 전화번호를 요주의 대상으로 분류했어. 그리고 그들이 유영철을 유인해서 붙잡았던 거야. 유영철이 체포될 때 마스크를 쓰고 있던 것도, 바로 이 업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해서 그랬다고 해. 유영철은 꼬리가 밟힐까 봐 한 번 썼던 업소 전화번호는 다시 이용하지 않았지만, 이 다른 전화번호들이 결국은 '하나의 업소'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지.

당시 경찰은 업주들의 요청에 따라 한 명의 경찰을 딸려 보냈을 뿐인데, 자신들이 유영철을 체포했다고 거짓 광고를 하고 관계자들을 승진시켰어. 하지만 이 진실이 밝혀지면서 경찰은 중징계를 받게 됐지. 그리고 유영철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보도방 업주들은 반년 후에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구속되고 처벌받았어. 이 충격적인 사건은 영화 '추격자'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지. 이처럼 정의가 뒤틀리고 무능한 모습은 분노를 더욱 증폭시키는 거 같아. 피해자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심지어 범인을 잡은 이들마저 처벌받아야 했다니… 정말이지 이 현실이 너무나도 잔인하게 느껴진다.

현재 유영철은 서울구치소에서 생활하고 있어. 여담으로 세계 연쇄 살인범 31위로 랭크에 올라와 있고 현재 유영철은 구치소에 생활하면서 “독거실 내 화장실 쪽 그 위와 천장 그 밑에서 자꾸 환상이 보인다. 3명에서 4명 정도가 귀신으로 자꾸 나타난다”“잠도 못 자고 너무 힘들어서 하루 일과가 피곤하다”는 취지로 불편을 호소하고 있대. 피해자와 유족에게 평생 용서를 구해도 모자랄 판에.. 유영철은 더 고통 속에서 살아가길 바라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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