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면 안될 범죄사건

지존파보다 더 유명한살인마로 알려지고 싶어했던 살인택시기사 온보현에 대해

범죄기록자 2025. 10. 1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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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보현 사건은 1994년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택시 연쇄 살인 사건이다. 택시 기사라는 직업을 이용하여 승객들을 살해하고 금품을 갈취하였다. 온보현은 중학교 중퇴로 학력미달 군면제자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온순하고 착했던 아이로 기억하고 예쁨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도 집안일은 어두웠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심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보고 분노를 품고 자랐다.


24살이 되던 해 아버지와 심하게 싸운 뒤 혈서로 "다신 집에 오지 않겠다"란 내용을 적고 집을나가 서울로 향했다. 집을 나온지 3년 뒤 1984년,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가 독약을 마셔 자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은 더 커져만 갔다.

 

20년만에 어머니의 기일을 맞아 고향에 내려갔다. 고향에서 마주친 아버지를 보고 화가 치솟았고 이때부터 살인 계획을 세웠다고한다. 4일동안 고향에 있으면서 이웃으로부터 삽과 낫을 빌려 뒷산으로 올라가 구덩이를 팠다. 고향이 본관이라 조상묘가 뒷산에 있었는데 사람들은 벌초하러 간다 생각했다.

 

출처 (MBC 갈무리) ⓒ 뉴스1

 

구체적인 살인 방법에 대해 계획을 세웠고 살인수첩까지 장만하였다. 서울에서 택시기사 일을 했던것을 바탕으로 곧장 택시회사로 들어가 차고에 세워져 있던 수유리의 국제운수 소속 스텔라차량을 절도하여 대진운수차량으로 번호판을 위조하였다. 94년 당시에는 택시범죄 및 전호판 위조가 성행하던 시기였고 기존 번호판에 납판을 대고 문지르기만 해도 가짜 번호판을 찍어낼 수 있었다. 번호판 숫자를 조작하는 방법으로는 숫자3을 8로 바꾸는 수법을 많이 썼다고 한다.

 


94년 8월말 첫 범행을 실행한다. 강동구 암사동에서 한 여성을 태웠고 흉기로 겁박하여 야산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그러나 차문을 여는 순간 피해자는 큰소리로 살려달라며 영동고속도로 이천 부근에서 도망쳤다. 출근시간이 가까워져 뒤쫓지 않은 채 도망갔다. 첫번째 범행은 그렇게 실패로 돌아갔다.

 

9월 1일 한동안 숨어 지내다가 택시 회사 사명과 번호판을 바꾸고 다음 날 새벽 다시 거리로 나갔고 1~3시경 43세 권모씨를 택시에 태워 안산고속도로 입구에서 성폭행을 저질렀다. 그대로 피해자를 실고 고향 쪽인 김제 영천마을 야산으로 피해자를 끌고 가 앞서 파놓았던 구덩이 옆에서 한차례 더 성폭행을 하였다. 그 후 피해자는 입과 팔, 그리고 다리를 포박한 뒤 구덩이 안으로 밀어 넣었고 온보현은 바로 묻지 않고 근처 숲에서 잠깐 잠이들었다. 그사이 피해자는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인근 공사장 인부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경찰에 신고하였다. 잠에서 깬 온보현은 피해자가 도주한 사실을 발견하고 아침까지 숨어 있었고 그가 운전하던 택시를 경찰이 끌고 가는것을 지켜본 뒤 온보현은 대전으로 도주하였다.

 

 

9월 11일 온보현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 저녁 8시30분경 독산동 부근에서 21세 호텔 종업원 엄모 씨를 태워 세번째 범행을 시도하였다. 그는 올림픽대로에서 피해자를 칼로 위협하여 강원도 횡성군에 위치한 야산으로 끌고 가 두 번이나 성폭행을 저질렀다. 이번엔 도망가지 못하게 나무에 포박하였다. 온보현은 피해자를 죽이지 않고 2차 범행을 하러 야산을 내려갔다. 피해자는 포박을 풀고 탈출에 성공하여 세번째 살인 계획도 다행히 미수에 그쳤다.

 

9월 12일 양재동 부근에 8시 30분경 26세 회사원 허모씨를 태웠다. 허모씨도 똑같이 칼로 위협하면서 전날 피해자를 포박해 놓은 강원도 횡성의 야산으로 끌고갔다. 이때 나무에 포박해놨던 피해자가 도망간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에 가득차 피해자 허씨를 나무에 묶고 얼굴, 무릎, 다리 등 온몸을 삽으로 끔찍하게 폭행한 뒤 그대로 도주하였다. 피해자 허씨는 그대로 사망하였다. 첫번째 살인행위였다.

 

 

범행 현장에서 벗어난 온보현은 신한은행 풍납동점에서 피해자 허씨 카드를 이용해 현금을 인출하여 사용하였다. 이 장면이 CCTV에 찍히면서 9월27일 전국에 지명수배가 내려졌다.

 

 

9월 13일 천호동 부근에서 19세 회사원 노모씨를 태웠다. 중부고속도로로 진입 한 뒤 그는 피해자를 칼로 위협하여 김천시에 위치한 여관으로 끌고 가 강제로 범했다. 피해자는 다른 피해자들과 달리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고 차분했기에 온보현은 피해자와 이야기를 나눴다고한다. 피해자 노모씨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홀로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온보현은 노모씨에게 동정하게되며 다음 날 새벽 노모씨를 고덕동에 위치한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온보현은 어린시절 아버지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피해자에게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9월 14일 가락동에서 특수학교 교사 24세 박모씨를 태운 뒤 똑같은 수법으로 칼로 위협해 납치 강간하려 하였다. 그런데 피해자가 심하게 반항하게 되는데 그때 흉기가 온보현의 손을 베이고 말았다. 극도로 흥분한 온보현은 피해자의 허벅지와 배 등 수차례 칼로 찔러 살해한 뒤 경상북도 김천시에 위치한 경부고속도로에 시신을 유기 하였다.

 

 

이 후 상처를 치료하고 숨어있기위해 다시 서울로 향했고 천호동에 위치한 여관에서 2주가량 숨어지냈다. 손을 베어 범행을 중단하였는데 부상과 더불어 지금까지 겪은적이 없던 피해자의 심한 반항에 원래 소심하고 용기가 부족했던 온보현은 다음범행을 저지를 의욕을 잃었다. 당시 94년 9월 20일 지존파가 검거되면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히며 시끄러웠던 시기였다. 이와 함께 온보현과 관련된 강력범죄 사건이 공개수사가 시작되었다. 

 

9월 27일 당시 지존파를 검거하여 유명해졌던 서초경찰서 입구에 있던 의경에게 자수하게 되는데 경찰조사에서 범행 동기를 밝하기를 "지존파와 나를 비교해보고 싶다. 지존파와 같은 감방에 넣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다.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은 자수라 선처가 될수 없었다. 온보현이 바랬던것처럼 지존파 못지 않게 매스컴에 상당히 노출되었다.

 

 

날마다 특필되는 지존파의 보도를 보면서 온보현은 지존파보다 내가 더 많이 죽였다라며 어필을 하게 되는데 그가 작성했던 살인 일지를 경찰에 제출하기도 하였다.

 

 

자수당일 계획일지에는 자기 나이처럼 38명을 죽이겠다는 목표와 날짜, 대상, 살해여부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프로파일러들은 온보현이 자수한건 진짜 자수가 아니라 과시형 범죄의 자수, 범행을 밝혀 세상에 공포를 떨게 만드는것이 목적있것같다고 분석하였다.

 

10월 31일 서울지검 강력부 박충근 검사는 온보현은 훔친 택시를 이용하여 부녀자 6명을 납치, 이 중 2명을 살해한 혐의를 적용해 온보현을 구속 및 기소한지 18일만에 사형을 구형했다. 아버지의 대한 증모심과 사회에 대한 복수심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정했으나 과대망상, 자기과시욕에 빠진 살인마의 범죄로 2명의 생명을 앗아간 피고인에게 극형으로 법이 살아있음을 보여야한다고 진행했다.

 

https://imnews.imbc.com/replay/1994/nwdesk/article/1939305_30690.html

 

온보현, 아버지와 여자에 대한 증오심이 범행 동기라고 진술[민병우]

온보현, 아버지와 여자에 대한 증오심이 범행 동기라고 진술[민병우]

imnews.imbc.com

 

손보현은 강도살인 및 시체유기죄 적용으로 앞서 구형된 대로 사형을 선고하였다. 2심에서도 사형이 선고되었고 온보현은 상고를 포기해 사형이 확정되었다.
 
1995년 11월 온보현은 지존파, 이호성 등 19명과 함께 사형이 집행되었다. 온보현은 자신과 같은 흉악범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강력 범죄자들에게 반드시 사형을 선고 및 형을 신속하게 집행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 날 사형집행 6번째 사형장에 들어왔고 온보현은 "제 몸은 실험용으로 필요한 곳에 사용되기를 바란다" 라고 유언을 남겼다.


 

손보현의 소심한 성격으로인해 마지막 희생자였던 특수학교 교사 박모씨의 희생이 추가적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았다고 범죄 프로파일러 표창원 교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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